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갈 3:5-9)
총회가 제정한 「남신도회주일」입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문득,‘의리(義理)’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배우 김보성씨의 외침을 뒤로하더라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혹은 신의(信義)입니다.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우선순위에 둡니다.
하지만, 이웃과 사회를 향한 믿음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사랑&이웃사랑”을 말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과 관련(창 12장),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선포합니다.
믿음을 특별히 강조하게 된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에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해야 구원에 이른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
곧 죄성(罪性)으로의 회귀(回歸)에 대해 바울이 화가 났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1)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11b).”고 외칩니다.
바울이 외친 믿음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강조한 믿음은 하나님과 마음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세상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만물과 인생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울이 외친 참된 믿음이요, 의(義)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웃과의 관계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20).”
20세기 최고의 신앙인으로 손꼽히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이웃 앞에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며, 이웃의 아픔과 외로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복(福)을 얻기 위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과 하나되게 하려는 노력으로 주님 안에 거하려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어떤 것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향한 믿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믿음을 주님께서 의롭다(!) 하셨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언급합니다.
그러한 삶을 의로움(!)이라 하는데, 아브라함의 의에는 다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떠나는 의로움입니다.
내 중심(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의 떠남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용기로서의 의(義)입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같아야 하고,
반대로 지금까지 걸어왔던 걸음도 주님의 은혜였노라 고백/인정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말씀을 따르는 의로움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은 그때, 그때 다릅니다(?)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시시때때로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해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한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만, 믿음으로 거하고, 또한 전진합니다.
이러한 불확실함에도 불구한 순종을 주님은 의롭다(!) 하십니다.
셋째, 복(福) 자체가 되는 의로움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b).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3b).”
아브라함은 나를 넘어 온 땅과 만물들에 이르기까지 열려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부르신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이루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기꺼이 내 자신을 내어주는 그 믿음을 의롭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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