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성령강림후 10) 밝히 보게 하소서(막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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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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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히 보게 하소서(막 8:22-26)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이 마무리되어 갑니다.
그 끝은 구원을 위한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행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슬슬 떠나기 시작합니다.
변명처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 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떠나는 무리가 있습니다.
반면, 여전히 남아 있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고백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요 6:68).”
예수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만,
제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 ‘종으로서의 메시아’를 말씀하시는데 말입니다.
오해(誤解)로 가득한 제자들을 바라보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21).”
답답함을 토로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본문 이후에 언급되는 성경의 구조를 보면, 제자들의 실패가 나열됩니다.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막 9:18).
예수께서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14).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막 10:38).”
물론, 중간중간 예수님의 뜻도 언급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막 8:31, 9:31, 10:34).”
십자가를 짊어지러 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문은 예수님의 배려와 위로가 그대로 담겨있는 말씀의 시작입니다.
마치 눈이 좋지 않아 안경을 맞추러 안경점에 들러,
내 눈에 딱 맞는 안경을 찾아 밝히 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뭐가 좀 보이세요?”
“아직은 잘~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제는 좀 어때요?”
“아, 이제는 잘 보입니다. 밝아 졌어요!”
그렇게 마가는 눈이 밝아지는 이야기를 답답한 제자들,
실수하고 오해하며 예수님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의 실수를 감싸주는 구조로 배치합니다.
요컨대 벳새다 맹인을 고치는 이야기(막 8장)를 시작이라고 하면,
맹인 바디매오를 눈 뜨게 한 사건(막 10장)을 마지막으로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죽음과 부활로 마가복음서를 마무리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만,
주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참고 또 참으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 가지 기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지 못하고 떠나는 무리와
여전히 남아 성령의 도우심과 함께하심 속에 밝히 알아, 죽도록 충성한 제자들입니다.
우리 화평교회가 참된 제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반복되는 실패의 과정이 괴로움일 수 있지만,
주님은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또 확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기도하는 한 분 가운데,
“목사님, 말씀으로 많이 알아갑니다.” 라고 격려, 응원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겁니다.
성경을 통한 안내자로서 화평교회가 제대로 된 길을 찾아 걸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저를 통해 길 되신 예수님을 목격했으면 좋겠고,
주님의 뜻과 진리를 밝히 볼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비록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언젠가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분명하고,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온전히 알게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고전 13:12)을 소망합니다.
성령강림절기의 끝자락,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밝히 보고, 듣고,
또한 살아가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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