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3(창조절 12) 예수로 인한 플러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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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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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인한 플러스 인생(골 2:8-15)
플러스(Plus)는 수학 용어로 ‘더하기(+)’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善)한 것들을 우리 삶에 채워야 합니다.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롬 16:19b).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십자가를 통해 제하고, 주님의 능력과 소망은 더하라(!)는 겁니다.
본문 말씀은 골로새 교회를 향한 옥중서신입니다.
세상에서 지혜롭다(?)하는 철학과 유전(遺傳)과 속임수가 오히려 마이너스 인생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 합니다.
당장의 유익을 쫓아 옳지 않은 길을 갈 경우, 망(亡)하게 됩니다.
말씀과 진리 위에 우뚝 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플러스 인생이 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 일으킴을 받아(12), 우리의 모든 죄가 제하여지고(13) 십자가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15).
성경에 ‘더하기’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참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형통케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세계적 기근(饑饉) 속에서 그를 통해 생명이 계속되는 은혜를 누렸으니, 야곱의 축복처럼 요셉은 샘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었다 할 것입니다(창 49:22).
그 비결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하심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믿음과 수고와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일 겁니다.
수많은 유혹에서 주님의 뜻 안에 있으려는 몸부림이 생명을 살리는 플러스 인생으로 우뚝 서게 한 것입니다.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헛된 철학과 속임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이는 실제(實際)가 아닙니다.
화려해 보이고, 크게 보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과장(誇張)일 뿐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소위 물질과 명예와 권력 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생명에 이릅니다(롬 1:17).
그 길을 열어 주신 분이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교만과 욕심의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한 플러스 인생은 천국의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으로 인해 눈을 뜬 사람들,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들, 고침받고 새생명을 얻은 사람들도 결국에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요컨대 다시 살아났던 나사로도 영원히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어도 힘들고 어렵다(!)’투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그런 겁니다.
세상에 주목하면 마이너스일 수 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는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플러스입니다.
이를 위해 본문은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헌 옷을 버려야 합니다.
곧 낡은 습관과 죄성을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11).”
오직 주님만 주인으로 섬기십시다.
둘째, 새로운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옷은 참 아름답습니다.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소유한 새 사람이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며, 믿음을 날마다 선포해야 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12).”
부활의 능력 가운데 거하는 플러스 인생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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