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적 신앙 (마 7:15~20)
할렐루야! 바꿔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합시다.
지난주에 전도사님이 올린 영상 다들 보셨죠?
안 보신 친구들이 있다면 꼭 보셔서 우리들의 신앙이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나누기 앞서서 성경 봉독 하도록 할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 마태복음 7:15-20
오늘은 귀납적 신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을 가능케 하는 방법 중에 연역법과 귀납법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연역법은요, 하나의 대전제를 가정해놓은 상태에서 주변의 것들은 찾아가는 방법이고요,
귀납법은 주변의 것들을 통해 하나의 대전제를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잘 아는 속담 중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옛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연역적으로 이해한다면, ‘콩 심은 곳에 콩이 난다’라는 대전제를 두고, 콩을 심었을 때 콩이 날 것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이것을 귀납적으로 이해한다면, 팥이 난 것을 보고 ‘여기에는 팥 작물이 심겨져 있구나.’ 라는 것을 예측해 내는 것이겠죠.
네. 이 연역법, 귀납법을 잘 이해한 채 설교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요,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셨던 산상수훈의 일부분입니다.
말씀 서두에 나오는 것처럼,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해서 오늘날에 이단, 사이비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자기 멋대로 풀어서 해석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이겠죠.
PPT 보시면 열매 없는 나무입니다.
우리들은 열매를 보지 않고서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쉽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나무에 열린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과가 열린 나무는 사과나무일 것이고, 배가 열린 나무는 배나무겠죠.
본문 말씀 16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오늘날의 이단, 사이비만 보더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꿀 같은 말솜씨에 쉽게 넘어가버리곤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의 재산을 몽땅 바치도록 유도하고요, 자신과 뜻이 같지 않다면 가족을 버리고 교단에 귀의하도록 하는 무서운 존재들입니다.
그 안에 참된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들을 하나님과 동일시 여기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 말씀 17절, 18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들은 열매를 통해서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수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우리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행실을 통해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욕심, 교만, 탐욕, 이기심 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요, 그들의 열매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나쁜 열매들이고요,
그들은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그것은 좋은 나무가 아닌,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못된 나무라는 사실입니다.
맺힌 열매를 통해서 나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봤던 귀납적인 추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주변의 것들을 통해서 대전제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욕심, 교만, 탐욕, 이기심을 통해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떨까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열매는 아름다운 열매인가요?
아니면 나쁜 열매인가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그들의 연역적인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대전제를 통해서 자신들의 행위 즉, 삶의 모습들을 정당화시키죠.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은 하나님을 안다고,
그 사랑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저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다. 라고 하면서 합리화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 전도사님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연역적인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 귀납적인 신앙의 자세를 견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귀납적인 신앙의 자세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열매를 통해 그를 알리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귀납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들은 서로의 열매를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그들에게 보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존재로 비추어지고 있습니까? (교회 안 , 밖 이단과 교리적 다름...)
나와 함께 웃고 떠들며 교제를 나누는 친구들에게, 또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설교를 듣고 있는 저들에게 과연 나는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는 것은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거짓, 욕심, 교만, 탐욕, 이기심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사랑, 온유, 자유, 희생이라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열매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올바른 대전제를 인식할 수 있기를 노력하세요.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우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화평 청소년부 친구들은 잘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주간도 말씀 안에서 사시고 건강한 얼굴로 뵙는 그 날까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예배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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