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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고멜의 세 자녀를 기억하라(호 1:2-9)
운영자 2026-02-28 추천 0 댓글 0 조회 21

고멜의 세 자녀를 기억하라(호 1:2-9)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폭압에 비폭력, 시민 참여 평화시위를 전국적으로 열었습니다.

이는 민족 자주의 의지를 선언하여 독립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습니다.

대외적으로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동북아 및 국제사회에 큰 방향을 일으켰습니다.

오늘은 그 역사와 의미를 기억하는 제107주년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함으로 공동체로서 ‘우리’가 됩니다.

한 마디로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기억하도록 함으로 민족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교회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곧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을 공유함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오늘 호세아 선지자의 가족을 소개, 기억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확인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자 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사랑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정말 사랑의 선지자였을까요?

괜히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지만, 자식의 이름을 어떻게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요?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하나님이 씨를 뿌리신다/흩으신다는 뜻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별장이 있는 지명(地名)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떠 올리면 됩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 가깝더니(왕상 21:1).”

문제는 그 지명이 북이스라엘의 상황과 맞물려 폭력과 갈취, 배반과 죽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피흘림이 가득한 곳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通用)되고 있었습니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히브리어 ‘’는 부정어로 영어의 ‘No’라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셋째 아들, ‘로암미’와 함께 엮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호 2:1)

본문 바로 뒤에 하나님의 약속, 곧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됩니다.

성경은 어김없이 '심판하시지만, 구원하신다(!)' 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 가운데‘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는 뜻이요, ‘암미’는 내 백성, 내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부정사가 함께하여 “사랑하지 않는/사랑받지 못한 딸”이라는 뜻과 “내 백성/아들이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이름입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왜 이런 수치(羞恥)를 당해야 하는 겁니까?

호세아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끝’이라는 뜻의 고멜은 ‘음란한 여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 1:2).”

그러나 호세아서에서 고멜이 음란했다는 단서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른은 음란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음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이름, 역사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구원을 봅니다.

십자가 사형틀을 기억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부활의 영광을 봅니다.

삼일절, 7,500명의 사망자와 16,000명의 부상자, 47,000명의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체포/구금자를 통해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고멜과 세 자녀의 이름을 기억하십시다.

기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확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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